수납장/모음집

구안동 김씨

범단 2018. 4. 7. 17:29

안녕하세요. 아빠가 저는 구 안동 김씨 충렬공파라고 하셨는데 몇대 손인지는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재자(가운데) 돌림이시고 할아버지는 묵자(끝) 돌림이세요. 저는 동자 돌림이에요. 예전에 친가애 갔을때 큰아빠가 26대 손이라고 하신고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전 누군가요

 

답변 :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충열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 중시조(中始祖)입니다.

 

조부님 : 23세 ⊙묵(默)자 돌림이시고,

부친님 : 24세 재(在)⊙자 돌림이시며,

님은 : 25세손 ⊙회(會)자 돌림이시나, 동자를 쓰셨습니다.

 

님은 왕가의 후손이시니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한글과 한문을 병용합니다.한문을 같이 쓰는 이유는 한문은 각기 다른 한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 양해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래는 안동 김씨에 대한 정보입니다.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에 대()하여

 

1.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시조(始祖) : 김숙승(金叔承)

2.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유래(由來) :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시조(始祖) 김숙승(金叔承)은 신라(新羅) 경순대왕(敬順大王)의 손자(孫子)이며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이며 고려(高麗) 때에 공부시랑(工部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중시조(中始祖) 김방경(金方慶)은 시조(始祖) 김숙승(金叔承) 6세손(世孫)이며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병부상서(兵部尙書) 김효인(金孝印)의 아들이다. 그는 고려(高麗) 원종 때 명장(名將)으로 삼별초(三別抄)의 난()과 왜구(倭寇)를 토평(討平)한 공()으로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定難定遠功臣)에 책록되었으며,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세자사(世子師)에 치사(致仕)되었다. 그 후() 상락군개국공(上洛君開國公)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後孫)들이 김숙승(金叔承)을 시조(始祖), 충열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中始祖)로 삼고 안동(安東)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3.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본관(本貫) 연혁(沿革)

 

안동(安東)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북동부(北東部)에 위치(位置)한 지명(地名)으로 고대(古代)에는 창녕국(昌寧國)인 소국이었다. 신라(新羅)가 이곳에 진출(進出)하여 고타야국(古陀倻國)으로 불렀고, 757(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改稱)하고, 직령현·일계현·고구현을 영현(領縣)으로 관할(管轄)하였다. 940(고려 태조 23)에 안동부(安東府)로 승격(昇格)되었다가 후()에 영가군으로 강등(降等)되었고, 995(성종 14) 행정구역(行政區域) 개편(改編) 때 길주로 승격(昇格)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변화(變化)를 거쳐 1030(현종 21)에 안동부(安東府)로 이름이 바뀌었다. 1197(명종 27)에 도호부(都護府)로 개칭(改稱)되었고, 1204(신종 7)에 대도호부(大都護府), 1308(충선왕 즉위)에 복주목(福州牧)으로 계속 승격(昇格)되었으나, 1310(충선왕 2)에 복주로 강등(降等)되었다. 1356(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昇格)되었으며, 1361년에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승격(昇格)되었다. 1383(우왕 9)에는 안동도(安東都)로 개편(改編)하였다가 1388년에 부사로 환원(還元)하였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서 경주(慶州)와 함께 경상좌도(慶尙左道)의 대읍으로 정치(政治행정(行政문화(文化)의 중심지(中心地) 역할(役割)을 하였다. 석릉(石陵고령(古寧화산(花山능라(綾羅지평(地平일계(一界고장(古藏) ()의 별호(別號)가 있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地方制度) 개정(改定)으로 안동부(安東府) 안동군(安東郡), 1896년에 경상북도(慶尙北道) 안동군(安東郡)이 되었다. 1931년 읍면제를 실시(實施)함에 따라 안동군(安東郡) 부내면이 안동읍(安東邑)으로 승격(昇格)되었으며, 1963년에 안동읍(安東邑)이 신안동시(新安東市)로 승격(昇格)되었다가 곧 안동시(安東市)로 개칭(改稱)하였다. 1995년 안동군(安東郡)이 안동시(安東市)에 통합(統合)되었다.

 

 

4.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계파(系派)

 

안동 김씨(安東 金氏)에는 본관(本貫)이 같으면서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다. 김숙승(金叔承)을 시조(始祖)로 하는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계통(系統)과 김선평(金宣平)을 시조(始祖)로 하는 신 안동김씨(新 安東 金氏) 계통(系統)으로 구분하고 있다.

밀직사사공파(密直司事公派)

개성윤공파(開城尹公派)

군사공파(郡事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안정공파(安靖公派)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제학공파(提學公派)

판삼사공파(判三司公派)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익원공파(翼元公派)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

정의공파(正儀公派)

충열공파(忠烈公派) 김방경(金方慶) 6대손(代孫)에서 21개 파에서 13개 파()만이 현존(現存).

밀직사사공파(密直司事公派) 개성윤공파(開城尹公派)

군사공파(郡事公派) : 김칠양(金七陽) 전서공파(典書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 김구용(金九容) 안정공파(安靖公派)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 김구정(金九鼎)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제학공파(提學公派) : 김익달(金益達) 판삼사공파(判三司公派)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익원공파(翼元公派) : 김사형(金士衡) 조선개국 1등공신, 태종때 좌의정에 등극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 정의공파(正儀公派)

 

 

5.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집성촌(集成村)

 

-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양지리

-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풍동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제기리

-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중리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산성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일원

-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일원

- 충청북도 증평군 일원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탑촌리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

-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일원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현애리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태곡리

- 평안북도 용천군 용암포읍 일원

-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일원

-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일원

 

 

6.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대동(大同) 항렬표(行列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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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세계도(世系圖)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는 신라(新羅) 왕실(王室)의 삼성(三性)((), (), ()) 가운데 하나이다.

시조(始祖) 김알지(金閼智) 7세손(世孫)인 미추왕(味鄒王)(신라 13)에 이르러 비로서 왕위(王位)에 오르게 됨으로서 신라(新羅) 마지막 왕()인 경순대왕(敬順大王), 김알지(金閼智) 28세손(世孫))에 이르기 까지 38명이 왕위(王位)를 계승(繼承)하였고 935년 경순대왕(敬順大王)이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그의 아들 9형제(兄弟) ()에 맏아들 김일(金鎰)[마의태자(麻衣太子)]은 망국(亡國)의 한()을 품고 금강산(金剛山) 입산(入山) 하였다.

안동김씨(安東金氏)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 7세손(世孫)이자 김씨(金氏)로서 첫 왕위(王位)에 오른 미추왕(味鄒王)의 셋째동생 말구(末仇)로부터 갈리었는데, 그 직계(直系)에서 왕위(王位)에 오른 분이 17대 내물왕(奈勿王), 22대 지증왕(智證王), 38대 원성왕(元聖王), 45대 신무왕(神武王), 46대 문성왕(文聖王), 56대 경순대왕(敬順大王)으로 신라(新羅) 왕조(王祖)에서 왕위(王位)에 오른 38분의 김씨(金氏) () 중 여섯 왕()이 안동김씨(安東金氏) 계통(系統)이다.

 

 

8.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세계도(世系圖)를 살펴보면,

 

비조(鼻祖)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선조에서 많은 왕()들을 배출(輩出)하셨고, 신라(新羅) 마지막 왕이신 경순대왕(敬順大王) 김알지님의 28대손이시고, 김은열(金殷說) 대안군(大安君)(경순대왕의 넷째 아드님)

 

 

9.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대표적(代表的)인 인물(人物)

 

- 김선 :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를 지냈다.

- 김흔 : 김방경의 아들. 찬성사를 지냈다.

- 김순(): 김방경의 아들. 삼사판사(三司判事)를 지냈다.

- 김윤():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를 지냈다.

- 김승용(承用) : 김선의 아들. 대제학을 지냈다.

- 김승택(承澤) : 평장사를 지냈다.

- 김영돈(永暾) : 유명한 무장(武將)이다.

- 김영후(永煦) : 우정승을 지내고 후손이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떨쳐 사실상 '구안동'의 주축이 됨

- 김질 : 좌의정을 지냈다.

- 김수동(壽童) : 영의정을 지냈다.

- 김찬() :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자점(自點) : 인조 때 영의정으로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구안동의 세는 꺾이게 되었다.

- 김제갑(悌甲) : 원주목사로 임진왜란 때 순절했다.

- 김시양(時讓) : 판서를 지낸 청백리이다.

- 김휘() : 김시양의 아들.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득신(得臣) : 숙종 때의 시인이며 참판을 지냈다.

- 김응하(應河) : 무장(武將)으로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 김응해(應海) : 김응하의 동생.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중기(重器) :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구() : 백범(白凡). 독립운동가, 정치가. 3.1운동 후 중국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을 지냈으며, 1928년에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40년 임시정부의 주석이되었으며, 해방되자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여 독립당 당수 등으로 있다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10.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김구선생(金九先生)에 대()하여.

 

김구선생(金九先生)은 황해도(黃海道) 해주군 백운방 텃골에서 아버지 김순영, 어머니 곽낙원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안동김씨의 익원공파이나 떵떵거리는 집안은 아니였고 평민 수준의 가정생활을 하였다. 유년시절 이름은 김창암이었으나 1893 18살에 동학에 입교하면서 이름을 김창수로 바꿨고, 이후 1912 37세때 비로소 김구로 개명했다. 구 자도 에서 로 바꾸었다고 한다.

 

< F 케네디, 루스벨트, 애덤스, 부시, 태프트. 미국(美國)의 대표적(代表的)인 정치(政治)명가(名家). 우리나라에는 대()를 이어 정치(政治)를 하고 국민(國民)의 존경(尊敬)을 받을만한 업적(業績)을 쌓은 가문(家門)이 없을까. 뉴시스는 한국(韓國)의 정치(政治)명가(名家) 기획기사 네 번째로 백범 김구(金九) 편을 게재한다.>"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대한민국(大韓民國) 임시정부(臨時政府)의 주석(主席)을 지낸 정치가(政治家)이자 독립운동(獨立運動)가 백범 김구(金九) 선생(先生) 72세였던 1947년 발표(發表) '나의 소원'의 한 부분이다. 김구(金九) 선생(先生) 10대 후반(後半) 독립운동(獨立運動)을 시작해 74세의 나이로 경교장에서 흉탄(凶彈)에 맞아 서거(逝去)할 때까지 평생(平生)을 민족(民族)의 독립(獨立)에 바친 애국지사(愛國志士)이다.그는 경순왕(敬順王)의 손자(孫子)인 김숙승(金叔承)을 시조(始祖)로 하는 구안동김씨 익원공파 21세손이지만, 빈농인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 사이에서 태어나 힘든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구 안동김씨(舊 安東 金氏) 는 고려(高麗) () 삼별초의 난과 왜구(倭寇)를 토벌(討伐)해 개국공신(開國功臣)에 봉()해진 김방경과 다섯 아들, 손자(孫子)들이 모두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명신록(名臣錄)에 오를 정도로 이름을 떨친 명문가(名文家).김사형(익원공)은 조선(朝鮮) 개국(開國)에 적극 가담(加擔)해 개국(開國)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된 인물(人物)이다. 하지만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등과 함께 고려말(高麗末) 충신(忠臣)이던 그의 형 김사렴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거부하고 도산(현 안동)에 은거했다. 벼슬을 거부한 김사렴의 후손들 중 일부는 훗날 황해도 해주로 이동, '해주김씨'로 분적했다.때문에 조선(朝鮮)() 세력(勢力)을 떨친 안동김씨(安東 金氏) 후손(後孫) ()에는 익원공파가 많다. 사육신(死六臣)의 단종(端宗) 복위운동(復位運動)를 좌절시키고 세조(世祖) 때 우의정(右議政)까지 오른 김질도 익원공파다. 김질의 아우 김무는 공조판서(工曹判書), 김질의 손자 김찬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랐다. 김질의 조카 김수동은 중종때 영의정을 지냈고, 수동의 동생 수경은 정국삼등공신 영양군에 봉해졌다.안동김씨는 인조 때 김구의 방계 조상인 김자점이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급격하게 몰락했다. 인조반정에 참가했던 김자점은 공을 세워 영의정까지 올랐고, 인조의 딸 효명공주를 며느리로 맞는 등 권세를 휘둘렀다. 그는 청나라 사신이나 역과 정명수 등과 친하게 지내며 청의 후원을 받았다.하지만 1646년 유일한 후원자였던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면서 '북벌론'이 대두되자 김자점은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이후 효종의 북벌론 계획을 청에 밀고, 광양으로 유배됐고 이후 아들 김익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처형당했다.김구 선생의 11대조는 당시 멸문지화를 피해 황해도 해주로 이동해 신분을 감추고 숨어 살았고 그의 자손들 역시 해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힘든 삶을 이어가야 했다.김구 선생은 이에 대해 자신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우리의 방조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하게 돼 내 11대조가 처자를 이끌고 서울을 떠나 해주의 백운방 텃골 팔봉상 산가봉 밑에 숨을 자리를 구했다" "그때 우리 집이 멸문지화를 비파는 길은 양반의 행색을 감추가 상놈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조상들은 군역전이라는 땅을 짓게 되면서부터 아주 상놈의 패를 차게 됐다"고 기술했다.1876 711일 황해도(黃海道) 해주에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김구 선생은 9세부터 과거에 급제하겠다는 생각으로 한글과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부친 김순영은 당시 김구가 양반의 자식들이 다니는 서당에서 텃세를 당할까봐 집안에 직접 서당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김구 선생은 15세부터 서당에서 본격적으로 한학을 공부했고 17세때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벼슬자리를 돈으로 사고 파는 세태에 절망한 김구(金九) 선생(先生) 18세때 동학에 입도하고 이름을 창수로 바꿨다.(아명은 창암. () 38세이던 1913년 옥중에서 고친 이름)19세 때는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공략했고, 이 사건으로 훗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부친인 안태훈의 집에 은거했다. 안 의사와의 운명적 첫 만남이었다.김구(金九) 선생(先生)은 안중근(安重根) 의사와의 첫 만남에 대해 백범일기에서 "그 때 중근은 열 세살로, 머리를 자줏수건으로 질끈 동이고 돔방총이라는 짧은 총을 메고 날마다 사냥을 일삼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영기가 발발했다"고 회고했다.김구 선생은 20세였던 1895년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에서 의병부대에 소속돼 일본군 토벌에 나섰다.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인들의 손해 시해된 해였다. 그는 명성황후(明成皇后) 서거(逝去) 이듬해인 1896년에는 일본(日本) 중위 쓰치다를 죽여 체포됐고 결국(結局) 사형(死刑)을 언도받았다. 하지만 그는 고종의 특명으로 1897년 특사, 구사일생했다.김구(金九) 선생(先生)은 이에 대해 "법무대신이 내 이름이 있는 사형죄인 명부를 가지고 입궐해 상감의 칙재를 받았는데 상감이 내 죄명이 국모보수(國母報讐, 국모의 원수를 갚음)임을 이상하게 여겨 사형을 정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라 한다" "'국모보수' 네 글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예정대로 교수대의 이슬이 되었을 것"이라고 기술했다

 

 

11.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족보(族譜) 발행(發行)

 

- 경진보 : 1580(조선 선조 13)

- 기미보 : 1739(조선 영조 15)

- 무술보 : 1778(조선 정조 2)

- 을유보 : 1825(조선 순조 25)

- 임인보 : 1902(조선 고종 6)

- 을해보 : 1935

- 기미보 : 1979

 

 

12.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인구수(人口數)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구 안동 김씨는 132,645가구 총 425,264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끝으로 님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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